마지막 근무다. 그리고 몇시간 뒤 9박 10일 말년휴가다. 그리고 복귀하면 이곳에서 하루밤 자고 드디어 전역이다.
마지막 근무라서 그런지 평소 하던 모든 것들이 괜히 어색하다. 또 괜히 센티해진다. 뭐 이런 날은 센티해져도 좋지~ 라고 혼자말 해본다. 지금의 감정들을 온라인으로 퍼질 활자들로 남기고자 글쓰기를 클릭한다.
112신고접수, 이제 이걸 하고 싶어도 못 한다. 내가 경찰공무원이 되지 않는 이상 이제 일반경찰서 경찰서 상황실에 들어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서란 곳도 이제 인연이 없을 것이다. 내가 범죄자가 되지 않는 이상, 아! 운전면허 때문에 몇 번 오겠구나... 그러고보니.. 딱지를 떼도 오겠구나.. ㅡㅡ^;; 이런 저런 일로 생각보다 자주 올 듯 싶네.. 여하튼 2년동안 "경찰"이란 시스템이 원할히 돌아가도록 신경썼다. 되도록이면 민원인 입장에서 생각했었다. 나름 친절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112신고접수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때론 심드렁하게, 짜증, 화도 냈었다. 민원인과 싸운 기억도 꽤 된다. 좋은 기억, 재미난 기억, 훈훈했던 기억, 짜증난 기억, 화나는 기억... 이 모든 것들이 머리에 남아 있는데, 이제 이런 기억들을 못 만든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저리게 한다. 아~ 이제 정말 제대구나, 이제 절대로 다시 하지 못할 일들과 이별이구나.. 뭐 이런 생각이 끊이지가 않는다. 또 재미나게도 오늘 밤은 왜 이렇게 112전화가 조용한지 모르겠다. 전화가 울리면 최대한 신속히, 친절히 신고를 받을텐데... 최대한 멋지게 무전을 날릴텐데..
기억들을 적어볼까?
화자아줌마, 하X방씨, 전두2리 장진X씨, 호반 아줌마.. 이 사람들 상습적으로 장난전화 하시는 분들이다. 장난전화가 맞을까? 아니면 정신이상이라 해야 맞을까? 워낙 자주 하셔서 전화번호랑 목소리까지 저절로 외워졌다. 그래서 112가 울리면 발신자번호 뜰 때부터 한숨이 나온다. 아~ 누구시네... 안 받을수는 없기에 받고 그 분들 알 수 없는 말들을 듣는다. 네~ 네~ 네~ 그러세요~ 아~ 네.. 이렇게 듣다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자연스럽게 끊으신다. 그런데 가끔식 홱~ 돌았다고 해야하나? 무언가 씌인 것처럼 버라이어티한 날이 가끔식 있다. 막 감정에 북 받치셔서 헥헥 거리시고, 울음도 터뜨리시고, 완전히 술에 취해 얼굴도 못 본 나한테 인생 한탄을 하신다. 이럴 때, 전화기 하나 붙들고 있는 나는 어떻게 할 지 몰라 그냥 듣게 된다. 그렇게 듣다 긴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끊으시는데.. 끊고 뚜뚜뚜 울리는 소리가 무언가.... 뭐라할까? 인생 쉽지 않다. 뭐 그런 느낌..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프고... 뭐 그런거..
그래, 한 3일전에도 하X방씨한테 전화가 왔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앞 뒤를 모르지만 그 분이 억울해서 112에 전화를 건 상황이었다. 듣기 힘든 욕도 하시고, 술에 취해서 발음도 흘려서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시고, 급기야 자살할꺼란 말까지 하시더라. 이 전화 끊고 바로 10분 뒤에 목 메달을꺼란 말씀을 하시더라, 너무나 놀래서 경찰관을 보냈는데, 다행히 아무일 없이 주무시고 계신다는 소리를 들어 다행이었다. 왜~ 112에 전화를 하실까..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생각했었다. 혼자 낸 결론은 그냥 누군가에게 "나"를 말하고 싶어서, 누군가가지금 "나"를 듣고 있다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둔게 아닐까? 라고 내렸었다. 지금도 이 결론은 유효하다.
내가 겪은 가장 황당한 112신고는 화장실로부터 시작된다. 신고자가 일단 술에 많이 취하셨고, 말을 심하게 더듬으셨다. 일단 어디어디 시장에 있는 어디어디 골목에 있는 화장실로 경찰관을 보내줬으면 하는 신고였다. 그래서 내가 왜 필요하신대요? 하니 그냥 보내달라고, 보내달라고 계속 보채시는 거다. 이유가 없으면 보내드릴 수 없다고 나도 계속 이야기 하니 슬슬 보내달라는 이유를 말하시는데 이런 투다. 여..여.. 여기.. 화장..실에 꼭 오..셔야 해요... 여...여..기.. 누.가..누가.. 똥을.. 변기..에.에..다 안 싸고 바깥에다 쌌..쌌..어요.. 이...거...좀.. 치워..치워.. 주세요... 정말 이랬다. 이건 너무 황당해서.. 말문이 팍 막히더라~ 다시 한번 반문했다. 아저씨 그러니까~ 화장실에 똥이 변기에 들어있지 않고, 바깥에 있어서 경찰관이 필요하신거에요? 그걸 치워달라고 신고하신 거 맞죠?? 그러니까 그 분이 시원하다는 듯이... 네에~~~~~ 이러더라... 아놔... @.@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전화를 끊고 좀 지나고서야 웃었다. 물론 그 때 경찰관은 안 갔었다. ㅎㅎ
내가 겪은 가장 힘든 신고접수는 성폭행사건이었다. 새벽 한 2시나 3시였을 것이다. 전화를 받았는데 여성분이 흐느끼면서 말을 하시더라, 자기를 어떤 남자가 강간하려고 했다고, 신고접수할 때 확인차 신고자에게 사건을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물어보기가 정말 힘들더라. 그렇다고 신고접수는 늦으면 안되기에 머리 속을 빨리 정리하고 물어봤다. 어떤 남자가 신고자분을 강간하려고 신고하신 거 맞나요? 이런 식으로 되물었는데 이 때 머리털이 다 서는 줄 알았다. 소름이.. 어후.. 112접수하면 왠만큼 긴장하는 편이 아닌데, 이 때 조금 얼얼한 상태로 경찰관을 보냈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이런 강력사건은 바로 처리하기 때문에 피해자를 경찰서로 데리고 와 조사를 시작한다. 그 때 느낀게, 아직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을텐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떤 강력사건이 상처를 안 주겠냐만 성관련범죄가 정말 피해자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듯 하다. 또 조사하는 형사도 힘들 것 같다... 물론 조사 받는 사람은 어떻게냐만... 그래도 다행인건 요즘은 여형사분들도 자주 보이고, 이런 여성피해자들을 위해 여경분들은 따로 교육을 받는 걸로 알고 있다.
113전화도 경찰서에 있다. 이 전화벨이 울리는게 꽤 싫었다. 간첩신고 전화인데, 정말 제대로 신고된 적 한번도 없다. 단 한번도 없다! 간첩에 간 자도 못 봤다. 요즘 간첩이 어디겠나? 또 여기는 북한과 정말 먼 곳인데... 이 113을 한국전력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여기 한전 아니에요. 경찰서에요 경찰서~ 이러면 아~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123이에요 123~ 정말 많다. 우리 모두 알아 두자 전기고장신고 및 상담은 123이다.
이건 내 한참전에 제대한 선임이 겪은 일인데, 어느 날 조용히 근무를 서고 있는데, 112전화가 울렸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112입니다." 이렇게 받으니 갑자기 나이 어린 녀석이 "추억만들기(피자가게) 몇 번이에요?" 라고 말한다. 그래서 내 선임 "여기 경찰서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니까, 오히려 자기가 당연하다는 듯 114에 전화한 것 처럼 "아! 진짜 추억만들기 몇 번이냐고요!!!" 짜증을 팍~ 내면서 말했다고 한다. 선임이 조금 당황하고 어리둥절해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기다려봐" 하고는 쿠폰에 적힌 번호를 친절히 알려줬다고 한다. "XXX-9992, 됐냐?" "감사합니다철컥, 뚜~ 뚜~ 뚜~" 나중에 선임이 나한테 하는 말이 애새끼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보니까, 순간 당황해서 기다려봐 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ㅎㅎ, 이 선임 곧 보겠네~ 후훗,
-
여기 적지 못한게 엄청 많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다 기억하지 못하는게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밤 12시를 넘어 새벽이 오면 조용한 가운데 많은 생각을 했었다. 조용한 새벽에 혼자만의 상념으로 빠져 즐기고 있을 때 쯤 시끄럽게 울리는 112전화를 저주한 적이 많았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너무 조용하니... 괜히 울적하다... 이제 끝났네... 정말... 하고 싶어도 못하네.. 정말.. 끝났네..
http://chungchoon.net/trackback/202
-
축하드려요~ 이제 일반인으로 돌아가시는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군요. 남은 휴가 잘 보내시길 빌어요~
장난 전화. 웃으면서 보다가 끄트머리에서 좀 찡했네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해서 전화헀는거. 참 가슴이 아려요. 그리고 그 성폭행 당할 뻔한 여자분. 상처 많이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우리나라가 이상하게도 피해자도 좋지 않게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서.... 한숨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