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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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여러 겹으로 되어있다. 그 겹이 쌓여가고, 바래고, 잃어버리고, 때론 다른 사람의 겹과 내 겹이 겹치고, 그렇게 그 겹친 면을 통해 새로운 겹이 나와 서로의 겹을 지탱하기도 한다. 서로를 지탱하던 겹도 시간이 지나 흔들릴 수 있고, 물에 젖은 휴지처럼 겹이었던 사실을 잃어버리게 할수도 있다. 물에 젖은 휴지가 다시 휴지가 되는 건 생활에서 불가능하지만, 우리 삶을 구성하는 겹은 충분히 그 형태를 되돌릴 수 있다. 왜? 우리는 서로의 겹이기에.. 이 모든 겹들은 어떠한 체제, 상황 속에서 생성되더라도 옳은 것, 틀린 것이 될 수 없다. 모든 겹들은 삶을 구성할 뿐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한 우리의 모든 겹은 서로를 지탱하는 겹이 대부분일 뿐이다. 이런 겹을 우리는 모두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사물이던, 어떠한 장소던, 시간이던, 그리고 필연이던, 이 소설을 관통하는 우연이던,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시작하는 시가 이길용이 강시우로 새로 태어날 때 당한 브레인워싱처럼 내 머리를 브레인워싱을 한다. 시가 좋더라. 중간에 써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여러번 내 입으로 말해 내 귀로 듣게 한다. 내가 위로하고, 내가 위로받게 하는 이 짧은 문장이 한동안 다른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여러 사람이 읽게, 여기다 남겨둔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메리 올리버, 기러기 그리고 모든 것이 드러난 내 뇌 속으로 책의 활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민과 "나"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처음에는 쉬운 듯 하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사랑이야기이자, 서로의 공통된 겹을 찾듯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민과 "나"는 서로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정민에게 이야기하다 서서히 책을 읽는 나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듯 싶더니, 입체누드사진 이야기를 한다. 그 잡을 수 없는 형태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작중화자 "나"는 자신이 경험했던, 수많은 누구에게 들었던, 수많은 누구가 누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책을 읽는 나에게 알려준다. 정민의 이야기, 정민의 삼촌이야기, 할아버지 이야기, 한기복 이야기, 이길용 이야기, 정민의 외할머니 이야기, 베르크의 이야기, 레이의 이야기, 강시우의 이야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좋아한다던 소설 초반부의 "나"의 이야기에서 알아봤어야 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 머리가 살짝 아팠지만, "단 하나의 실낱같지만 확실한 무엇"에 이끌려 히로뽕을 한번도 안해봤지만 취한 듯한 기분으로 계속 읽어 내려간다. 남은 페이지가 얇아질수록 남은 공간이 많은 여러 겹침에 탄복하며,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란 문장을 읽게 된다. 아~ "나"가 썼던 초록색 노트가 내게 직접 전해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수없이 느껴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혹은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외로움은 가치를 지닌다. 모든 외로움은 서로의 관계를 지탱해주는 별들의 중력같은 것이니까,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 모를 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까, 마치 천왕성이 외로움에 비틀대는 이유가 숨겨져 더 외로웠을 해왕성이었듯, - 책을 잠시 놓게 한 순간이 많았다. 내가 살아낸 지난 몇십 년간의 생의 기원을 찾는다면 그건 거품과도 같은 환각의 시대에서 기인하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러나 시네마스코프처럼 펼쳐진 환각 속에서도 파편의 일생을 버틸 수 있었떤 것은 무엇보다도 단 하나의 실낱같지만 확실한 무엇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는 내 심중의 재산이니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진실이라 여기에 그 일을 회고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밥을 다 먹고 난 뒤에 정민은 푸른색 계통의 아이섀도와 마스카라로 눈만 치장하고는 손거울을 손에 들고 나를 돌아보며 "예뻐?"라고 묻곤 했다. 그게 정민이 할 수 있는 화장의 전부였지만, 그런 정민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그녀가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로 일주일을 버티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양 볼도 좀 빨갛게 하면 더 예쁠꺼야"라고 내가 말하면 정민은 "그건 화장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고, 네가 나를 좀 부끄럽게 만들면 되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릅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이렇게 다 쓰다가 날 새겄다. ^-^;;;;; 한 개만 더 적고, 끝내련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결점들', 한 여인의 변덕과 연약함에도 애착을 갖는다. 그녀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과 기미, 오래 입어 해진 옷과 삐딱한 걸음걸이 등이 모든 아름다움보다 더 지속적이고 가차없이 그를 묶어놓는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그런가? 감각들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있지 않다는, 다시 말해 창문과 구름, 나무가 우리 두뇌 속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보고 감각하는 바로 그 장소에 깃들고 있는 것이라는 학설이 옳다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린 우리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고통스럽게 긴장되고 구속되어 있다. 우리 눈을 못 뜨게 하면서 감각은 한 무리의 세때처럼 그 여인의 눈부심 속에서 펄럭이며 날아오른다.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숨을 곳을 찾는 새들처럼. 그렇게 저 감각들은 안전하게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그늘진 주름살 속으로, 매력 없는 행동과 사랑받는 육체의 드러나지 않는 흠들 속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그 곁을 지나가는 그 누구도 이 결점들, 이 흠들 속에 덧없는 사랑에의 동요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 이 사람 좋아진다. 후훗~ 그리고 이 소설 필로폰 제조방법이 자세히 나와있다....^-^;;;; 그리고 김연수 작가의 관한 읽을거리, 그의 블로그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5008 http://larvatus.egloo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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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김연수 좋아요. 이사람은 어떤건 너무 쉽게 쓰고 어떤건 또 너무 어렵게 쓰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만, 대체적으로 뭔가 공감이 간다든지, 참좋다..이런느낌이 많아요. 요건 읽다가 잠시 멈췄는데, 제가 아무래도 현재의 상태와 어떤 이야기의 책이냐의 상관관계가 무지하게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거 같은데 그때는 도통 안 읽히고 답답하단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나중에 읽으면 되니깐, 이런 믿음을 주는 작가.
어제는 2주도 넘게 들고있던 책을 어렵게어렵게 겨우겨우 읽더니만 밤 10시쯤 아무생각없이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는 새벽1시15분까지 한권을 홀랑 다 읽어버리고 잤어요. 이 무슨 요상한 독서습관인지...하하~~ -
책을 읽고 즐거움을 얻고 싶은 요즘인데 제가 읽고 있는 지금의 책은 사회 비판을 하는 책이라서 그러지를 못하고 있네요. 지금 읽는 책은 보면서 격한 감정을 가지게 되어서 좀 힘이 듭니다. 빨리 김연수 씨의 책으로 돌아가야겠어요.
김연수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아무래도 그 지적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모두 흡수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서 많이 넘쳐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만요.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의 사진을 보고도 많이 반했답니다. 홓홓. 김연수 작가가 대학교를 다닌 것이 1991년이라 그 경험과 그 느낌을 제가 오롯이 느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