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대학생, 군인,
지금은 대학생이 아닌 준사회人,
그리고 대학생, "곧" 있으면 대학생이 아닌 정말 사회人,
신분으로 표현했을 때 내 삶의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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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리개 초등학생일 때,
까까머리 중학생일 때,
술을 몰래 숨어서 먹던 고등학생일 때,
대학교 공원에서 실없는 농담을 하던 1학년 새내기일 때,
심심하면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어른세계의 막연한 동경이다.
그저 자유로울 것 같았고, 또 자유로울 것 같았고, 정말 자유로울 것 같았는데..
준사회인으로 사는 지금,
생각했던 것이 남극이라면 실상은 북극마냥 반대편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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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글의 서두부터 너무 슬퍼진다.
지금의 슬픈 글을 쓴다는 것조차도 슬퍼진다.
그런데 글을 써야 나중에라도 덜 슬퍼질 것 같다.
나중에라도 덜 슬퍼지려고 지금 이 글로 잠깐 슬퍼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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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 전, 부모님에게 부탁했다.
독립해서 살아보고 싶으니, 처음 정착자금만 지원해달라고,
고맙게도 부모님은 허락하셨고, 같이 살 친구놈이랑 살기 좋은 집을 구하려 난생 처음 부동산 5~6개 돌아다니
고, 양말, 베게, 이불, 밥그릇같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고, 이사하는 날 군대 후임들이 사준 책꽂이에 책이 꽂히
는 소리를 경쾌하게 듣고, 내 몸 속을 타고 내리던 소주가 3월 중순의 쌀쌀함을 녹일 때, 그 때 이 곳에 정착했다.
3월 중순 추웠는데, 꽃들은 하나도 안폈는데, 내 마음 속은 벌써 개나리는 폈고, 지금 이 홈피색깔의 진달래도 폈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벚꽃까지 만개했을 정도로 쌀쌀한 3월 중순 날씨와 다르게 내 마음은 따뜻했다. 따스했다.
마음 속에 자리잡은 그런 따뜻함, 따스함이 자신감이 되었고, 그런 자신감을 토대로 일자리를 잡고, 연두색과 분홍색이 섞인 조금 발랄해 보이는 넥타이를 서툴게 메고, 구두약이 없어 휴지에 물을 묻혀 구두를 닦고 출근한게 3월 17일로 정확히 기억한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설득하고,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안겨주고 싶은 직장이었다.
(이렇게 쓰니 정말 간단하네...)
사람들을 만나는게 좋지만, 사람들의 다양함에 지칠 때면 저녁이 되고, 그렇게 저녁이 되면 늦은 저녁 혹은 저녁을 거르고 먹게 되는 소주 한잔에 행복했다. 처음에는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지만, 점점 비워지는 술잔에 맞춰 점점 공유의 범위가 넓어지고, 공유하기 힘든 부분까지 점차 공유되어 가는 그들과 나의 사이도 내게 행복했다. 그리고 나의 집에 초대해 제법 술에 젖는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서로 배시시 웃으면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아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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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년, 행복하겠구나, 이런 느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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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시간"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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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 두가지는 그다지 신경 안썼던게 사실이다.
뭐하러 신경 썼겠는가? 학창시절때는 모든 시간이 공부하는 시간이었고, 대학 1학년은 모든 시간이 술 먹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군대 2년의 모든 시간은 당연히 군대에 안에 있는 시간이었을테고, 그리고 내 주머니에 있는 돈 중 대체 얼마나 내 부모님이 주신 돈이 아니었을텐가? 설령 내가 벌었다고 해도 그 돈 중 用돈이 아니었을 돈이 얼마나 되었을까?
"시간"과 "돈" 나한테는 삶에서 꼭 필요한 요소였지만 지금까지 삶을 돌아볼 때 그다지 목메어 살게한 요소는 아니었다.
"시간"과 "돈"이 없어서 술을 못 먹었던가?
술 먹을 사람과, 술 먹을 사람의 생각차이때문에 술을 못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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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머릿 속에 새겨진 생각은 다르다.
한 개인의 삶에서 "시간"과 "돈"만큼 중요한게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든 것의 시작은 "시간"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것의 시작의 확장은 "돈"으로부터 나오더라~
여기다가 조금 첨부하자면 "앎"이 한몫할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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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직장생활 3개월,
물론 나의 "시간"을 많이 빼앗긴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내게 던져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되지는 않지만,
지금 사는게 힘들지만 그래도 내게 "돈"이란 걸 만지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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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생각 끝에, 생각 끝에,
약간의 낙하산을 타서 다른 직장에 간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지만,
지금 23살의 나에게는 벅찬 일이 될 직장에 간다.
핸드폰을 괜히 만지작 거리는 횟수만큼 잘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돈다.
아, 정말 걱정된다. 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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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볼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조금 상투적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삶의 어떠한 것을 하려고 할 때 허들을 넘는다고 자주 하잖아요? 저도 그 표현을 빌리자면 나이는 어리지만 몇 가지의 허들을 넘었어요. 지금 머리속에 떠오르는게 입시, 군대,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이 면접, 그리고 면접 이후 여기서의 생활이 당연히 가장 높은 허들이라 생각되요. 제게 직면한 가장 큰 허들이 앞에 있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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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이렇게 했지만, 걱정이 가시질 않는다.
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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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
나 아직 23살이다.
상처를 받아도 아물 수 있는 나이다.
아무는 속도가 빠른 나이란 소리다.
상처를 한번도 받지 않겠다는 말은 절대로 안한다.
상처를 받지만 아무는 속도가 빠르기에, 몇개의 상처를 받아도,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조금 더 상처 받아도 된다. 더 깨져도 된다.
그렇게 받은 상처로 굳은 살이 생긴다면 우리네 긴 삶을 볼 때, 현명한 것 아닌가?
긴 삶에서 굳은 살이 먼저 생긴다는 것, 어찌보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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